공부법
한국사 순종~제 1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 사이에 인물 및 사건 정리
한국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,
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까지는 정리를 어느정도 한 것 같은데요,
순종 ~ 제 1대 대통령 이승만 취임전까지 ( 일제강점기 ) 일어난 사건들과
중요 인물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감이 도무지 안 잡힙니다.
제가 너무 지엽적인것까지 봐서 그런지 인물이 수십~수백명에
중요한 사건도 엄청 많은 것 같은데
어떤걸 중심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지 도와주세요..
이렇게만 정리해도 근현대사 인물 중 일제강점기 활동 인물 및 사건 정리 끝날까요>?
1. 일제의 무단 통치 체제 (1910년대 상항)
정치/치안:
조선총독부 설치 (1910): 일본 육·해군 대장 출신이 총독으로 임명됨.
헌병 경찰제: 군인인 헌병이 일반 치안을 담당. 즉결 처분권 보유.
조선 태형령 (1912):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야만적인 매질 형벌.
제복과 칼: 교사와 공무원이 제복을 입고 칼을 차고 근무하여 공포 분위기 조성.
경제 수탈:
토지 조사 사업 (1912~1918): 기한부 신고제.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거대 지주로 성장.
회사령 (1910): 회사 설립 시 총독의 '허가'를 받아야 함 (민족 자본 성장 억제).
기타 법령: 삼림령, 어업령, 광업령, 은행령 등을 통해 자원 약탈.
2. 국내 비밀 결사 (1910년대 인물 & 사건)
독립의군부 (1912):
인물: 임병찬 (고종의 밀지를 받음).
키워드: 복벽주의 (왕정 복고),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시도.
대한 광복회 (1915):
인물: 박상진 (총사령), 김좌진 (부사령), 채기중.
키워드: 공화 정체 지향, 군대식 조직, 친일파 처단, 군자금 모금.
105인 사건 (1911):
인물: 김구, 이승훈, 양기탁, 안명근.
사건: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를 해체시킨 사건.
송죽회 (1913):
인물: 김란사, 황애덕. (여성 비밀 결사)
3.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(지역별 인물 & 단체)
① 서간도 (남만주 삼원보)
단체: 경학사 → 부민단 → 한족회.
교육: 신흥무관학교 (무장 투쟁의 요람).
핵심 인물: 이회영 6형제, 이상룡, 이동녕, 김동삼.
② 북간도 (용정, 왕청)
단체/교육: 서전서숙 (이상설), 명동학교 (김약연), 중광단 (서일).
핵심 인물: 이상설, 김약연, 서일 (대종교 주역).
③ 연해주 (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)
단체: 권업회, 대한 광복군 정부 (1914), 대한 국민 의회 (1919).
핵심 인물: 최재형 (자금줄), 이상설 (정통령), 이동휘 (부통령, 한인 사회당), 문창범.
④ 상하이 및 중국 관내
단체: 동제사 (신규식), 신한 청년당 (1918).
핵심 인물: 신규식, 김규식 (파리 강화 회의 파견), 여운형.
⑤ 미주 (미국 및 하와이)
단체: 대한인 국민회 (안창호), 대조선 국민 군단 (박용만).
핵심 인물: 안창호 (실력 양성), 박용만 (무장 투쟁), 이승만.
1920년대
(정치/치안)
보통 경찰제: 헌병 경찰을 폐지했으나, 실제 경찰 수와 예산은 1910년대보다 대폭 증액됨.
치안 유지법 (1925):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악법 중의 악법.
언론/집회 허용: 『동아일보』, 『조선일보』 창간 허용 (하지만 검열, 삭제, 정간 일상화).
(경제 수탈)
산미 증식 계획 (1920~1934): 일본의 식량 부족 해결을 위해 쌀 수탈. 증산량보다 수탈량이 많아 국내 식량 사정 악화.
회사령 폐지 (1920): '허가제'에서 '신고제'로 변경. 일본 기업의 조선 진출을 용이하게 함.
관세 폐지 (1923): 일본 상품이 무관세로 들어오면서 민족 산업 위기.
(국외 무장 독립 전쟁)
봉오동 전투 (1920. 6.): 홍범도 (대한 독립군), 최진동. 일본군 월강 추격대 격퇴.
청산리 대첩 (1920. 10.): 김좌진 (북로 군정서), 홍범도 (연합 부대). 백운평, 완루구, 어랑촌 등에서 대승.
간도 참변 (경신참변, 1920): 일본군의 보복으로 간도 한인 학살.
자유시 참변 (1921): 독립군 내부 주도권 다툼과 러시아 적군에 의한 무장 해제 비극.
3부 성립 (1923~1925): 참의부, 정의부, 신민부가 성립되어 만주 지역에서 자치 정부 역할 수행.
미쓰야 협정 (1925): 만주 군벌과 일본 경찰의 협정으로 독립군 활동 위축.
의열 투쟁 (의열단, 1919 결성):
김원봉 (단장), 신채호 (조선 혁명 선언 집필).
김상옥 (종로 경찰서 폭탄), 김익상 (조선총독부 투탄), 나석주 (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).
실력 양성 운동 (민족주의):
물산 장려 운동 (1920~): 조만식 (평양). "내 살림 내 것으로", 일본 관세 폐지에 대응.
민립 대학 설립 운동 (1923): 이상재. "한민족 1천만이 한 원씩". 일제는 경성 제국 대학 설립으로 방해.
문맹 퇴치 운동: 『조선일보』의 문자 보급 운동, 『동아일보』의 브나로드 운동(30년대 연결).
사회주의와 학생 운동:
조선 공산당 창당 (1925): 마르크스주의 확산.
6·10 만세 운동 (1926): 순종의 인산일.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첫 합작 시도.
광주 학생 독립 운동 (1929): 한일 학생 간 충돌이 전국적 항일 운동으로 확산 (3·1 운동 이후 최대).
신간회 (1927~1931):
인물: 이상재 (회장), 안재홍, 허헌.
강령: 정치적·경제적 각성, 단결, 기회주의(자치론자) 배격.
활동: 광주 학생 독립 운동에 조사단 파견 및 민중 대회 시도.
근우회 (1927):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 운동.
형평 운동 (1923): 조선 형평사 (진주).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.
농민/노동 운동:
암태도 소작 쟁의 (1923): 소작료 인하를 이끌어낸 농민의 승리.
원산 총파업 (1929): 1920년대 최대 규모의 노동 운동.
소년/여성/종교:
방정환: 어린이날 제정, 천도교 소년회 활동.
한용운: 불교 유신론, 시집 '님의 침묵'.
박은식/신채호: 민족주의 사학 (『한국통사』, 『조선상고사』).
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:
내선일체(內鮮一體):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.
일선동조론(日鮮同祖論): 일본인과 조선인의 조상은 같다는 왜곡.
황국 신민 서사 암송: 일본 천황의 충성스러운 백성이라는 맹세를 강제함.
신사 참배 및 궁성 요배: 일본 신전(신사)에 절하게 하고, 천황이 사는 쪽(궁성)을 향해 절하게 함.
창씨개명(1939): 한국식 성명을 일본식으로 강제 변경.
교육 탄압: 조선어 사용 금지, 한국사 교육 금지. 소학교 명칭을 국민학교(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)로 변경(1941).
병참 기지화 정책: 한반도를 일본의 전쟁 보급 기지로 만듦 (북부 지역의 중화학 공업 발전 - 남면북양 정책과 연계).
인적 수탈 (사람):
노동력: 국민 징용령(1939)으로 광산, 공장 등에 강제 동원.
군사력: 지원병제(1938) → 학도 지원병제(1943) → 징병제(1944) 실시.
여성: 여자 정신대 근무령(1944)을 통해 노동력 착취 및 일본군 '위안부' 강제 동원.
물적 수탈 (물건):
식량: 미곡 공출제, 식량 배급제 실시.
자원: 금속류 회수(공출) - 숟가락, 밥그릇, 종까지 떼어감.
3. 1930년대 국외 무장 투쟁: 한·중 연합 작전
한국 독립군 (지청천): 쌍성보, 사도하자, 대전자령 전투 승리 (중국 호로군과 연합).
조선 혁명군 (양세봉): 영릉가, 흥경성 전투 승리 (중국 의용군과 연합).
동북항일연군: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들이 중국 공산당군과 연합 (보천보 전투 관련).
1940년대 독립운동과 건국 준비
① 충칭: 대한민국 임시 정부 (우익 중심)
인물: 김구(주석), 지청천(총사령), 조소앙.
사건: 한국 광복군(1940) 창설.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합류(1942).
활동: 대일 선전 포고, 인도·버마 전선 파견, 국내 진공 작전 준비(정진군).
이념: 조소앙의 삼균주의 (정치·경제·교육의 균등) 바탕으로 건국 강령 발표.
② 예안: 조선 독립 동맹 (좌익 중심)
인물: 김두봉.
활동: 군사 조직인 조선 의용군을 거느리고 중국 공산당(팔로군)과 함께 대일 항전.
③ 국내: 조선 건국 동맹 (좌우 합작)
인물: 여운형.
활동: 해방 직전 국내에서 비밀리에 조직. 해방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(건준)로 발전.
해방 직전 (1940~1945. 8.)
① 대한민국 임시 정부 (충칭, 우익 중심)
1940: 한국 광복군 창설 (총사령 지청천, 참모장 이범석).
1941: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 강령 발표. (정치·경제·교육의 균등)
1941: 대일 선전 포고 (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).
1942: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합류 → 군사력 강화.
1945: 국내 진공 작전 계획 (미군 OSS와 협력, '정진군' 조직).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실행은 무산됨.
② 조선 독립 동맹 (예안, 좌익 중심)
1942: 김두봉을 주석으로 결성.
군사 조직: 조선 의용군 (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연합 작전).
③ 조선 건국 동맹 (국내, 좌우 합작)
1944: 여운형이 비밀리에 조직. 해방 직후 '건준'의 모태가 됨.
④ 국제 사회의 약속
카이로 회담 (1943): "적절한 시기에(In due course)"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명문화. (김구의 외교적 성과 반영)
얄타 회담 (1945): 신탁 통치 최초 논의, 소련의 대일전 참전 결정.
포츠담 선언 (1945): 카이로 회담의 내용을 재확인.
해방과 혼란 (1945. 8.~1945. 12.): 격동의 8.15
1945. 8. 15.: 광복.
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(건준): 여운형, 안재홍 주도. 치안 유지 및 행정권 인수 준비.
조선 인민 공화국 (인공) 선포: 미군 진주 전 서둘러 정부 형태를 갖춤.
미군정 실시 (1945. 9.): 하지(Hodge) 중장 부임. '인공'과 '임시정부'를 모두 부인하고 직접 통치 선포.
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(1945. 12.):
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.
미·소 공동 위원회 설치.
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결정.
결과: 국내에서 신탁 통치 반대(우익, 김구·이승만) vs 모스크바 결정 지지(좌익)로 나뉘어 극심한 좌우 대립 발생.
분단의 서막 (1946~1947)
제1차 미·소 공동 위원회 (1946. 3.): 협의 대상 단체 범위를 두고 미·소 대립으로 결렬.
정읍 발언 (1946. 6.): 이승만이 "남측만이라도 임시 정부를 세워야 한다"며 단독 정부 수립 가능성 제기.
좌우 합작 운동 (1946. 7.):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(중도좌파)과 김규식(중도우파)이 '좌우 합작 7원칙' 발표. (미군정의 초기 지지를 받았으나 여운형 암살 등으로 결국 실패)
제2차 미·소 공동 위원회 (1947. 5.): 다시 결렬 → 미국이 한국 문제를 UN으로 넘김.
정부 수립으로의 길 (1948. 1.~1948. 8.): 대한민국 탄생
UN 총회 결정 (1947. 11.):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결정. (소련의 거부로 북한 진입 불가)
UN 소총회 결정 (1948. 2.): "선거가 가능한 지역(남한)에서만이라도 선거 실시" 결정.
제주 4·3 사건 (1948. 4.):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 봉기와 이에 대한 무력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 발생.
남북 협상 (1948. 4.):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, 김두봉과 만남. "단독 정부 수립 반대"를 외쳤으나 실질적 성과 없이 끝남.
5·10 총선거 (1948. 5.):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·민주적 선거 (제헌 국회 구성).
제헌 국회 개원: 국호를 '대한민국'으로 확정. 7월 17일 제헌 헌법 공포.
대한민국 정부 수립 (1948. 8. 15.): 초대 대통령 이승만, 부대통령 이시영 취임.
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까지는 정리를 어느정도 한 것 같은데요,
순종 ~ 제 1대 대통령 이승만 취임전까지 ( 일제강점기 ) 일어난 사건들과
중요 인물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감이 도무지 안 잡힙니다.
제가 너무 지엽적인것까지 봐서 그런지 인물이 수십~수백명에
중요한 사건도 엄청 많은 것 같은데
어떤걸 중심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지 도와주세요..
이렇게만 정리해도 근현대사 인물 중 일제강점기 활동 인물 및 사건 정리 끝날까요>?
1. 일제의 무단 통치 체제 (1910년대 상항)
정치/치안:
조선총독부 설치 (1910): 일본 육·해군 대장 출신이 총독으로 임명됨.
헌병 경찰제: 군인인 헌병이 일반 치안을 담당. 즉결 처분권 보유.
조선 태형령 (1912):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야만적인 매질 형벌.
제복과 칼: 교사와 공무원이 제복을 입고 칼을 차고 근무하여 공포 분위기 조성.
경제 수탈:
토지 조사 사업 (1912~1918): 기한부 신고제.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거대 지주로 성장.
회사령 (1910): 회사 설립 시 총독의 '허가'를 받아야 함 (민족 자본 성장 억제).
기타 법령: 삼림령, 어업령, 광업령, 은행령 등을 통해 자원 약탈.
2. 국내 비밀 결사 (1910년대 인물 & 사건)
독립의군부 (1912):
인물: 임병찬 (고종의 밀지를 받음).
키워드: 복벽주의 (왕정 복고),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시도.
대한 광복회 (1915):
인물: 박상진 (총사령), 김좌진 (부사령), 채기중.
키워드: 공화 정체 지향, 군대식 조직, 친일파 처단, 군자금 모금.
105인 사건 (1911):
인물: 김구, 이승훈, 양기탁, 안명근.
사건: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를 해체시킨 사건.
송죽회 (1913):
인물: 김란사, 황애덕. (여성 비밀 결사)
3.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(지역별 인물 & 단체)
① 서간도 (남만주 삼원보)
단체: 경학사 → 부민단 → 한족회.
교육: 신흥무관학교 (무장 투쟁의 요람).
핵심 인물: 이회영 6형제, 이상룡, 이동녕, 김동삼.
② 북간도 (용정, 왕청)
단체/교육: 서전서숙 (이상설), 명동학교 (김약연), 중광단 (서일).
핵심 인물: 이상설, 김약연, 서일 (대종교 주역).
③ 연해주 (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)
단체: 권업회, 대한 광복군 정부 (1914), 대한 국민 의회 (1919).
핵심 인물: 최재형 (자금줄), 이상설 (정통령), 이동휘 (부통령, 한인 사회당), 문창범.
④ 상하이 및 중국 관내
단체: 동제사 (신규식), 신한 청년당 (1918).
핵심 인물: 신규식, 김규식 (파리 강화 회의 파견), 여운형.
⑤ 미주 (미국 및 하와이)
단체: 대한인 국민회 (안창호), 대조선 국민 군단 (박용만).
핵심 인물: 안창호 (실력 양성), 박용만 (무장 투쟁), 이승만.
1920년대
(정치/치안)
보통 경찰제: 헌병 경찰을 폐지했으나, 실제 경찰 수와 예산은 1910년대보다 대폭 증액됨.
치안 유지법 (1925):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악법 중의 악법.
언론/집회 허용: 『동아일보』, 『조선일보』 창간 허용 (하지만 검열, 삭제, 정간 일상화).
(경제 수탈)
산미 증식 계획 (1920~1934): 일본의 식량 부족 해결을 위해 쌀 수탈. 증산량보다 수탈량이 많아 국내 식량 사정 악화.
회사령 폐지 (1920): '허가제'에서 '신고제'로 변경. 일본 기업의 조선 진출을 용이하게 함.
관세 폐지 (1923): 일본 상품이 무관세로 들어오면서 민족 산업 위기.
(국외 무장 독립 전쟁)
봉오동 전투 (1920. 6.): 홍범도 (대한 독립군), 최진동. 일본군 월강 추격대 격퇴.
청산리 대첩 (1920. 10.): 김좌진 (북로 군정서), 홍범도 (연합 부대). 백운평, 완루구, 어랑촌 등에서 대승.
간도 참변 (경신참변, 1920): 일본군의 보복으로 간도 한인 학살.
자유시 참변 (1921): 독립군 내부 주도권 다툼과 러시아 적군에 의한 무장 해제 비극.
3부 성립 (1923~1925): 참의부, 정의부, 신민부가 성립되어 만주 지역에서 자치 정부 역할 수행.
미쓰야 협정 (1925): 만주 군벌과 일본 경찰의 협정으로 독립군 활동 위축.
의열 투쟁 (의열단, 1919 결성):
김원봉 (단장), 신채호 (조선 혁명 선언 집필).
김상옥 (종로 경찰서 폭탄), 김익상 (조선총독부 투탄), 나석주 (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).
실력 양성 운동 (민족주의):
물산 장려 운동 (1920~): 조만식 (평양). "내 살림 내 것으로", 일본 관세 폐지에 대응.
민립 대학 설립 운동 (1923): 이상재. "한민족 1천만이 한 원씩". 일제는 경성 제국 대학 설립으로 방해.
문맹 퇴치 운동: 『조선일보』의 문자 보급 운동, 『동아일보』의 브나로드 운동(30년대 연결).
사회주의와 학생 운동:
조선 공산당 창당 (1925): 마르크스주의 확산.
6·10 만세 운동 (1926): 순종의 인산일.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첫 합작 시도.
광주 학생 독립 운동 (1929): 한일 학생 간 충돌이 전국적 항일 운동으로 확산 (3·1 운동 이후 최대).
신간회 (1927~1931):
인물: 이상재 (회장), 안재홍, 허헌.
강령: 정치적·경제적 각성, 단결, 기회주의(자치론자) 배격.
활동: 광주 학생 독립 운동에 조사단 파견 및 민중 대회 시도.
근우회 (1927):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 운동.
형평 운동 (1923): 조선 형평사 (진주).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.
농민/노동 운동:
암태도 소작 쟁의 (1923): 소작료 인하를 이끌어낸 농민의 승리.
원산 총파업 (1929): 1920년대 최대 규모의 노동 운동.
소년/여성/종교:
방정환: 어린이날 제정, 천도교 소년회 활동.
한용운: 불교 유신론, 시집 '님의 침묵'.
박은식/신채호: 민족주의 사학 (『한국통사』, 『조선상고사』).
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:
내선일체(內鮮一體):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주장.
일선동조론(日鮮同祖論): 일본인과 조선인의 조상은 같다는 왜곡.
황국 신민 서사 암송: 일본 천황의 충성스러운 백성이라는 맹세를 강제함.
신사 참배 및 궁성 요배: 일본 신전(신사)에 절하게 하고, 천황이 사는 쪽(궁성)을 향해 절하게 함.
창씨개명(1939): 한국식 성명을 일본식으로 강제 변경.
교육 탄압: 조선어 사용 금지, 한국사 교육 금지. 소학교 명칭을 국민학교(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)로 변경(1941).
병참 기지화 정책: 한반도를 일본의 전쟁 보급 기지로 만듦 (북부 지역의 중화학 공업 발전 - 남면북양 정책과 연계).
인적 수탈 (사람):
노동력: 국민 징용령(1939)으로 광산, 공장 등에 강제 동원.
군사력: 지원병제(1938) → 학도 지원병제(1943) → 징병제(1944) 실시.
여성: 여자 정신대 근무령(1944)을 통해 노동력 착취 및 일본군 '위안부' 강제 동원.
물적 수탈 (물건):
식량: 미곡 공출제, 식량 배급제 실시.
자원: 금속류 회수(공출) - 숟가락, 밥그릇, 종까지 떼어감.
3. 1930년대 국외 무장 투쟁: 한·중 연합 작전
한국 독립군 (지청천): 쌍성보, 사도하자, 대전자령 전투 승리 (중국 호로군과 연합).
조선 혁명군 (양세봉): 영릉가, 흥경성 전투 승리 (중국 의용군과 연합).
동북항일연군: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들이 중국 공산당군과 연합 (보천보 전투 관련).
1940년대 독립운동과 건국 준비
① 충칭: 대한민국 임시 정부 (우익 중심)
인물: 김구(주석), 지청천(총사령), 조소앙.
사건: 한국 광복군(1940) 창설.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합류(1942).
활동: 대일 선전 포고, 인도·버마 전선 파견, 국내 진공 작전 준비(정진군).
이념: 조소앙의 삼균주의 (정치·경제·교육의 균등) 바탕으로 건국 강령 발표.
② 예안: 조선 독립 동맹 (좌익 중심)
인물: 김두봉.
활동: 군사 조직인 조선 의용군을 거느리고 중국 공산당(팔로군)과 함께 대일 항전.
③ 국내: 조선 건국 동맹 (좌우 합작)
인물: 여운형.
활동: 해방 직전 국내에서 비밀리에 조직. 해방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(건준)로 발전.
해방 직전 (1940~1945. 8.)
① 대한민국 임시 정부 (충칭, 우익 중심)
1940: 한국 광복군 창설 (총사령 지청천, 참모장 이범석).
1941: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 강령 발표. (정치·경제·교육의 균등)
1941: 대일 선전 포고 (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).
1942: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합류 → 군사력 강화.
1945: 국내 진공 작전 계획 (미군 OSS와 협력, '정진군' 조직).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실행은 무산됨.
② 조선 독립 동맹 (예안, 좌익 중심)
1942: 김두봉을 주석으로 결성.
군사 조직: 조선 의용군 (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연합 작전).
③ 조선 건국 동맹 (국내, 좌우 합작)
1944: 여운형이 비밀리에 조직. 해방 직후 '건준'의 모태가 됨.
④ 국제 사회의 약속
카이로 회담 (1943): "적절한 시기에(In due course)"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명문화. (김구의 외교적 성과 반영)
얄타 회담 (1945): 신탁 통치 최초 논의, 소련의 대일전 참전 결정.
포츠담 선언 (1945): 카이로 회담의 내용을 재확인.
해방과 혼란 (1945. 8.~1945. 12.): 격동의 8.15
1945. 8. 15.: 광복.
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(건준): 여운형, 안재홍 주도. 치안 유지 및 행정권 인수 준비.
조선 인민 공화국 (인공) 선포: 미군 진주 전 서둘러 정부 형태를 갖춤.
미군정 실시 (1945. 9.): 하지(Hodge) 중장 부임. '인공'과 '임시정부'를 모두 부인하고 직접 통치 선포.
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(1945. 12.):
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.
미·소 공동 위원회 설치.
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결정.
결과: 국내에서 신탁 통치 반대(우익, 김구·이승만) vs 모스크바 결정 지지(좌익)로 나뉘어 극심한 좌우 대립 발생.
분단의 서막 (1946~1947)
제1차 미·소 공동 위원회 (1946. 3.): 협의 대상 단체 범위를 두고 미·소 대립으로 결렬.
정읍 발언 (1946. 6.): 이승만이 "남측만이라도 임시 정부를 세워야 한다"며 단독 정부 수립 가능성 제기.
좌우 합작 운동 (1946. 7.):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(중도좌파)과 김규식(중도우파)이 '좌우 합작 7원칙' 발표. (미군정의 초기 지지를 받았으나 여운형 암살 등으로 결국 실패)
제2차 미·소 공동 위원회 (1947. 5.): 다시 결렬 → 미국이 한국 문제를 UN으로 넘김.
정부 수립으로의 길 (1948. 1.~1948. 8.): 대한민국 탄생
UN 총회 결정 (1947. 11.):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결정. (소련의 거부로 북한 진입 불가)
UN 소총회 결정 (1948. 2.): "선거가 가능한 지역(남한)에서만이라도 선거 실시" 결정.
제주 4·3 사건 (1948. 4.):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 봉기와 이에 대한 무력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 발생.
남북 협상 (1948. 4.):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, 김두봉과 만남. "단독 정부 수립 반대"를 외쳤으나 실질적 성과 없이 끝남.
5·10 총선거 (1948. 5.):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·민주적 선거 (제헌 국회 구성).
제헌 국회 개원: 국호를 '대한민국'으로 확정. 7월 17일 제헌 헌법 공포.
대한민국 정부 수립 (1948. 8. 15.): 초대 대통령 이승만, 부대통령 이시영 취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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